주 4.5일제 실험, 대한민국 '축복'일까 '독배'일까? (노동생산성 논쟁, 양극화 심화 우려, 경기도 4.5일제 실험)
2025년, 대한민국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OECD 평균보다 한 달 이상 더 많은 노동시간을 기록하며 '일 중독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정치권과 지자체가 앞다퉈 주 4.5일제,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복지 청사진 뒤에는 국가 산업 역량 저하라는 서늘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과연 이 정책은 대한민국 노동 환경을 개선할 혁신의 기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충수가 될 것인가.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노동생산성 논쟁, 시간이 문제인가 효율이 문제인가
주 4일제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쟁점은 바로 노동생산성입니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51달러로 OECD 37개국 중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대론자들은 이 수치를 근거로 "생산성도 낮은데 근무시간까지 줄이면 기업의 생산 차질은 물론 이윤에도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노동생산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축제를 도입하면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노동생산성은 총생산량을 분모인 근무시간으로 나눈 값입니다. 즉, 일하는 시간이 작을수록 생산성 수치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 단순히 생산성이 낮은 것이 아니라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과거 주 6일제에서 5일제로 전환할 때도 같은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경제는 성장했습니다.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 주 5일제를 논의했던 시기는 경제 고성장기였고 기업의 생산력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성장 시대이며 기업이 인건비 부담 앞에 놓인 상황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산 구조의 변화입니다. 과거 우리가 저임금을 바탕으로 공장에서 단순 상품을 생산했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창의적이고 지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질적 측면에서 노동은 시간보다 몰입도와 효율성이 더 중요합니다. 주 4일제 찬성론자들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합니다.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면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생산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부 국내 기업에서 주 4.5일제를 도입한 결과, "예전엔 루즈하게 업무를 하다 보니 시간이 낭비됐는데, 지금은 집중해서 일하게 됐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노동생산성 논쟁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중소기업에게는 그림의 떡, 양극화 심화 우려
주 4.5일제가 모든 기업에 평등한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벌리는 양극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일부 대기업은 이미 제한적으로나마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동화 기술과 AI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일 여력이 충분합니다. 반면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중소기업에게 주 4일제는 여전히 '그림의 떡'입니다.
특히 제조업과 서비스업 현장에서는 근무시간 단축이 곧 생산량 감소로 직결됩니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불법 초과근무를 강요받는 족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자동문 전문 기업인 코와드의 사례를 보면, 주 4.5일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결제 단계를 자동화하고, MES라는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으로 발주와 자재 분류 업무를 대체"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 구축에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세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주 4일제를 선택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존재입니다.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자영업자 등 고용 형태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이재명 당선인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법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에게까지 주 4일제 혜택이 미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 간 근로조건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 4일제가 '선택받은 소수'만의 특권으로 전락한다면, 이는 사회적 형평성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실질적 지원책 없이 제도만 도입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경기도 주 4.5일제 실험, 성공의 열쇠는 준비에 달렸다
경기도는 2025년 3월 12일부터 공모를 통해 도내 기업 50여 개를 선정해 주 4.5일제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지자체 주도로 진행되는 가장 본격적인 근로시간 단축 실험입니다. 과거에도 일부 지자체가 주 4.5일제를 시도했지만, 공공기관 직원이나 육아휴직자 등 제한적 대상에게만 적용돼 완전한 주 4.5일제라 부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도 사업은 직종과 직급을 불문하고 한 기업의 모든 직원이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것을 지원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경기도는 참여 기업에 월 26만 원, 경기도 생활임금 수준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비즈니스 프로세스 및 생산 프로세스 개선을 돕습니다. 또한 근태 관리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며, 사업 종료 후에도 성과 평가와 근로시간 단축 유지 여부를 추적 모니터링할 계획입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급변하는 직업의 형태와 일의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경기도가 앞장서야 한다"며 사업 취지를 밝혔습니다. 경기도 노동시장은 공장부터 IT 산업 현장까지 다양한 기업과 직종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축소판이자 테스트베드입니다. 따라서 이번 실험 결과는 향후 전국 확산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실험이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기업 38개, 영국 기업들이 6개월간 주 4일제 실험에 참여했고, 스페인 발렌시아에서는 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달간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약 2년간 전체 인구의 1%를 대상으로 근무시간 단축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들 실험의 결과는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성공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듀윌은 2019년 주 4일제를 전면 도입했다가 외부 환경 악화로 다시 주 5일제로 복귀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는 주 4일제의 성패가 단순히 제도 시행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기업의 경영 여건과 산업 특성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경기도 실험이 성공하려면 획일적 단축보다는 기업별 맞춤형 지원, 그리고 충분한 준비 기간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주 4.5일제는 분명 매력적인 비전입니다. 하지만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이 오직 인적 자원의 성실함과 고강도 노동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생산성 혁신 없는 근무시간 단축은 글로벌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철저히 결과론적 영역이며, 줄어든 시간이 업무 몰입도를 높여 오히려 혁신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준비입니다. 중소기업 지원, 생산성 향상 시스템 구축,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BAHKmi4F1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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